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가회(可晦), 호는 취원당(聚遠堂) 또는 죽와(竹窩). 아버지는 조윤신(曺允愼)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장말손(張末孫)의 손녀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56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69년(선조 2) 형조좌랑에 이어 감찰을 지내고 1576년 중시(重試)에 장원급제, 의금부도사에 이르렀다.
1578년 강동(江東)으로 좌천된 아우 조호익(曺好益)을 만나려고 평안도도사의 직책을 얻어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는 그 우애를 가상히 여겨 정문을 내려 표창하고, 『삼강행실록』에 수록하게 하였다. 오봉서원(五峰書院)과 청효사(淸孝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취원문집(聚遠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