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중겸(仲謙), 호는 은은당(隱隱堂). 사과(司果) 조철수(趙哲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양부서윤 조준(趙俊)이고, 아버지는 제용감부정 조응세(趙應世)이며,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노공좌(盧公佐)의 딸이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7년 사포서별제를 거쳐 의금부도사·전생서주부·사헌부감찰·연천현감 등을 지냈다. 1614년(광해군 6) 간신들의 전횡이 심하고 폐모론이 일어나 이원익(李元翼)·홍무적(洪茂績) 등이 쫓겨나 귀양가게 되자 섬강(蟾江)에 은퇴하였다.
서울을 떠날 때 배에다 서책과 기르던 학을 싣고 가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선처럼 여겼다고 한다. 1623년 인조반정 뒤 평시서영에 등용되고 이어 장악원첨정이 되었는데, 이 때 나이 80이 넘었으므로 통정계(通政階)에 올랐다.
김효원(金孝元)·이경중(李敬中)과 한 동리에 살며 깊이 사귀었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평하기를, 김효원은 백옥무진(白玉無塵: 흰 옥에 티끌하나 없음), 이경중은 설월교휘(雪月交輝: 달빛에 비친 눈처럼 빛남), 조린은 춘풍해빙(春風解氷: 봄바람이 얼음을 녹임)과 같은 성품을 지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