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 태조배향공신이며 개국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조뇌(趙賚)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조순생(趙順生)이며,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사정 원유용(元有容)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병조정랑이 되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아버지와 함께 금산에 유배되어 관노가 되었다. 1469년(예종 1) 4월 관노에서 방명되었고, 5월에는 고(故) 판서(判書) 윤사윤(尹士昀)에게 사급되었던 그의 처 소사(召史)와 충청도 목천에 안치되었던 아들 조예(趙禮)도 사면되었다. 그의 처가 중궁(안순왕후)의 족친이었기 때문이다.
1470년(성종 1) 고신(告身)을 돌려받았으나, 1477년 목천에 살고 있던 중 경조(冏照)가 현감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한다고 밀고하여 하옥되었다. 1478년 학생 이자명(李自明)으로부터 무고당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도승지에 추증되고, 목천의 장보사(章甫祠)·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