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수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경종이 즉위한 뒤 정언에 제수되어 진휼곡 탕감에 노력을 기울였고, 이미 제거된 노론 대신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의 잔재 제거 및 국가정책에 의해 훼철된 윤증(尹拯)을 제향한 서원의 재건에 앞장섰다.
1724년(경종 4) 지평을 거쳐, 정언으로 재직 중 경종이 죽자 약을 잘못 쓴 어의(御醫)와 이공윤(李公胤)을 탄핵하였고, 1727년(영조 3) 사간(司諫)으로 재직시 문외출송(門外黜送)당한 정호(鄭澔) 등을 극형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세자를 보필하는 필선(弼善)·보덕(輔德)을 거쳐 이듬해에는 집의(執義)로 제수되었다가 용강현령(龍岡縣令)으로 파견되었으며, 이어 사간으로 승진되었다. 그 뒤 1729년 도당록(都堂錄)에 선발되었고, 수찬(修撰)을 거쳐 1731년 승지(承旨)에 올랐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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