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유학사 ()

유교
문헌
민중서관에서 현상윤이 조선시대 유학의 본질과 사상에 관하여 개설하여 1949년에 간행한 유학 사상 개설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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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민중서관에서 현상윤이 조선시대 유학의 본질과 사상에 관하여 개설하여 1949년에 간행한 유학 사상 개설서. 학술서.
편찬/발간 경위

1949년 민중서관(民衆書館)에서 간행되었다.

내용

모두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서론」에서는 조선 유학의 본질과 사상사에 미친 영향 및 동양사상(東洋史上)에서의 위치에 대해 서술하였고, 제2장 「나려시대(羅麗時代)의 유학」에서는 조선 유학의 기원과 신라·고려 시대 유학의 학풍 및 그 대표적 유학자에 대해 논술하였다.

제3장 「이조 초기의 유학」에서는 조선의 정책과 유학의 장려, 그리고 당시 유학의 학문적 경향과 함께 그 대표적 유학자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제4장 「지치주의(至治主義)의 유학」에서는 지치주의 유학의 특색, 조광조(趙光祖), 지치주의 운동의 좌절과 지치주의 유학파에 속한 학자들에 대해 논술하였다.

제5장 「성리학」에서는 성리학이 조선 유학사에 점한 위치, 성리학이 융성하게 된 유래, 그 학풍 및 내용,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이이(李珥) 등의 여러 사상가에 대해 상술하였다. 제6장 「퇴율(退栗) 전후의 일반 명유(名儒)」에서는 그 학문적 경향, 저명한 유학자와 학문 사상의 대략(大略)에 대해 논하였다.

제7장 「예학(禮學) 중심의 유학」에서는 예학 숭상의 필연적 추세와 학자들에 대해 다루었고, 제8장 「모화사상(慕華思想)의 고취」에서는 모화사상 고취의 유래 및 대표자에 대해 논술하였다. 제9장 「당쟁시대의 유학」에서는 유학 사상과 당쟁의 필연성, 영향 및 야기된 문제를 중심으로 당시 유학의 흐름에 대해 서술하였다.

제10장 「양명학(陽明學)의 유입과 그 배척」에서는 양명학의 전래 및 배척과 그 부진에 대해 논하고, 제11장에서는 호락학파(湖洛學派) 분열의 원인과 대표자들, 그리고 양론의 개략적인 비평에 대해 논술하였다. 제12장 「경제학파의 출현과 풍동(風動)」에서는 경제학파의 대두와 원인, 학풍 그리고 그 세력과 대표자에 대해 기술하였다. 제13장 「성리학의 재연(再燃)」에서는 경제학파 운동의 부진, 성리학의 세력 만회, 주리파(主理派)·주기파(主氣派)의 발달, 그리고 절충파의 쇠함과 성함에 대해 상술하였다.

제14장에서는 서학(西學)의 전래와 재야 선비의 감염에 대해, 제15장에서는 척사위정의 운동 발발의 정세 및 대표자에 대해, 제16장에서는 근세 이후 일반 유학계의 학문 경향과 저명한 유학자에 대해 각각 약술하였다. 제17장에서는 유학이 조선 문화에 남겨 놓은 흔적 및 그 폐단, 그리고 조선조 종말에 대한 서술로 결론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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