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한국독립단과 한인협회를 조직하였고, 『신한민보』를 창간하여 독립을 위한 외교·언론활동을 전개한 외교관·관료·독립운동가.
이칭
  • 구심(求心)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출생지경기도 양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조용하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조용하 전후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한국독립단과 한인협회를 조직하였고, 『신한민보』를 창간하여 독립을 위한 외교·언론활동을 전개한 외교관·관료·독립운동가.

개설

호는 구심(求心). 경기도 양주 출신. 조정규(趙禎奎)의 아들이며, 조소앙(趙素昻)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1년 대한제국 주독(駐獨)·주프랑스 공사관 참사관(參事官)을 역임하다가 1903년 귀국, 경기도 죽산·이천·마전의 3개군의 군수를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북경(北京)으로 망명, 경학사(耕學社)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安昌浩) 등과 같이 하와이에서 한국독립단(韓國獨立團)·한인협회(韓人協會) 등을 조직,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1년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 독립을 위한 외교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락사명을 띠고 상해(上海)로 가던중 일본 고베[神戶] 함정 위에서 밀정의 밀고로 붙잡혔다. 1933년 1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37년 3월 3일 병보석되었으나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京城地方法院判決文」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