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한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문원제조, 좌승지, 선산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선술(善述)
  • 현주(玄洲)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양(漢陽)
  • 사망 연도1631년(인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승지|선산부사
  • 출생 연도1572년(선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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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문원제조, 좌승지, 선산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옥(趙玉)이고,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어머니는 한응성(韓應星)의 딸이다. 위한(緯韓)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학유에 제수되고 이어서 전적, 형조·호조의 좌랑, 사간원정언, 영암과 영천(榮川)의 군수 등을 역임하고,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에 임명되어 호남·영남 지방에 들끓는 도적의 무리를 토평,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예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동부승지로 전임되었다.

이 무렵 광해군의 정사가 극도로 문란하여지자 외직을 청하여 상주목사가 되었다. 인조반정 후 형조참의에 제수되고 승문원제조를 겸직하였다. 다음해 좌승지를 거쳐 선산부사가 되었다.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였으며,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 초한 육조(楚漢六朝)의 유법(遺法)을 터득하였다.

말년에 서도를 즐겨 종왕(鍾王: 鍾繇와 王羲之)의 글씨에 비유되었다고 한다. 권필(權韠)·이안눌(李安訥)·임숙영(任叔英) 등과 교우하였으며, 후진으로 이경석(李景奭)·오숙(吳䎘)·신천익(愼天翊) 등이 있다. 장성 추산사(秋山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현주집』이 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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