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여산군수, 인천부사,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대형(大亨)
오은(悟隱)
시호
혜목(惠穆)
이칭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3년(선조 16)
사망 연도
1646년(인조 24)
본관
양주(楊州)
주요 관직
인천부사|영돈녕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여산군수, 인천부사,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대형(大亨), 호는 오은(悟隱).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조존성(趙存性)이며, 인조의 국구(國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0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별좌(別坐)·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광해군의 난정이 심해지고 아버지가 옥사에 연좌되어 화를 당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인조반정 후 형조좌랑에 제수되었다. 직산현감으로 나가 민심을 무마하고 많은 치적을 올렸다. 군자감정에 승진되었다가 다시 여산군수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인천부사 재직시 딸이 인조의 계비(繼妃: 莊烈王后)로 간택되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돈녕부사에 배수되었다. 시호는 혜목(惠穆)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