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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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대이(大而)
  • 이양당(二養堂), 치재(恥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621년(광해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참판|한성부좌우윤
  • 출생 연도1552년(명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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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대이(大而), 호는 이양당(二養堂) 또는 치재(恥齋). 관찰사 조한필(曺漢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언박(曺彦博)이고, 아버지는 조몽정(曺夢禎)이며, 어머니는 홍신(洪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선조 32)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595년(선조 28) 의금부도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서정이 문란하고 피폐해졌으므로 소를 올려 시무십책(時務十策)을 개진하였는데, 그 소가 매우 간곡하였으므로 선조가 가상히 여기고 윤허하였다.

1599년 익위사부수(翊衛司副率)에 제수되었으며, 그 해 가을 문과에 오른 뒤 예조·호조·병조의 좌랑·정랑을 역임하고, 사간원정언·시강원사서를 거쳐, 1603년(선조 36) 강원도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전적·직강·수찬·교리·필선·사예·장령·사옹원정을 역임하고, 1610년(광해군 2) 우승지가 되었다. 사신이 되어 명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으며, 황해도관찰사·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 공조참판에 이어 한성부좌·우윤이 되었다.

그 뒤 관직을 떠나 두문불출, 오직 독서에 묻히다가 70세에 죽었다. 그의 집에 소장되어온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나라에 바쳐 임금으로부터 표피(豹皮)를 하사받았으며, 호성(扈聖)·선무(宣武)·정난(靖難)의 공로로 원종1등공신이 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의서(醫書)로 『이양편(二養編)』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포저집(浦渚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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