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 ()

운학문집
운학문집
유교
인물
조선시대 세자익위사세마, 사근찰방, 제원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형중(衡仲)
운학(雲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9년(선조 2)
사망 연도
1647년(인조 25)
본관
함안(咸安)
출생지
함안(咸安)
주요 관직
세자익위사세마|사근찰방|제원찰방
정의
조선시대 세자익위사세마, 사근찰방, 제원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중(衡仲), 호는 운학(雲壑). 함안 출생. 아버지는 장령의 증직을 받은 조순세(趙舜歲)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조이천(曺以天)의 딸이다. 정구(鄭逑)·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였다. 최명룡(崔命龍)과 교우를 맺고 성리학과 예학(禮學)에 주력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황산찰방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어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받았다. 1627년 세자익위사세마를 거쳐 사근찰방으로 옮겼으며, 송광유(宋匡裕)의 무고를 받았으나, 곧바로 풀려났다.

그 뒤 제원찰방을 지내고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제원찰방으로 있을 때 군수 김성발(金聲發)과 협력,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순절한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을 수리해 오단(五壇)으로 만들고, 조헌(趙憲)·고경명(高敬命) 등을 봉향하고 제문을 지어 칠백의사의 충혼을 위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초모도유사(招募都有司)로서 노등(盧縢)·이두연(李斗然) 등과 함께 의병을 소집하고 군량미를 모아 여산(礪山)의 의병소에 조달하였다. 1639년 고향인 덕치(德峙)에 보(洑)를 쌓고 장장 20리의 수로를 개척, 황무지인 들판 수십만 평을 옥토로 만들어 주민들이 그 공덕을 기려 비를 세웠다.

만년에는 회문산(回文山) 밑에 문덕당(文德堂)과 삼구재(三求齋)를 짓고 심구정(心求正)·우구현(友求賢)·전구경(田求耕)을 좌우명으로 삼아 후진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다. 도학과 문장이 당세에 뛰어났다. 임실의 학정서원(鶴亭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운학문집(雲壑文集)』 9권 3책이 있다.

참고문헌

『도암집(陶庵集)』
『운계집(雲溪集)』
『인조실록(仁祖實錄)』
『중봉집(重峯集)』
『호남창의록(湖南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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