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조필달의 유물.
개설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때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고, 선전관(宣傳官), 금부도사(禁府都事)ㆍ순안현령(順安縣令)ㆍ나주감목(羅州監牧)ㆍ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효종이 즉위하자 송시열(宋時烈)과 동조하여 북벌(北伐)에 참여하였고, 부호군(副護軍), 칠국별장(七局別將), 수어청별장 겸 오위장군(守御廳別將兼五衛將軍),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 때에는 전라병사(全羅兵使)로 제수되었고, 계속하여 경상좌도병사 겸 진주목사(慶尙左道兵使兼晋州牧使),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三道水軍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승임(陞任)되었고, 평안병사 겸 안주목사(平安兵使兼安州牧使)로 재임중 우연히 병을 얻어 1664년(현종 5) 64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내용
참고문헌
- 『전국문화재유적총람』(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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