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여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극원(克遠)
  • 수죽헌(數竹軒)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640년(인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여주목사
  • 출생 연도1558년(명종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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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여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극원(克遠), 호는 수죽헌(數竹軒). 조세흠(曺世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희인(曺希仁)이고, 아버지는 조광복(曺光福)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충의위(忠義衛) 창(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탐화랑(探花郎)이 되어 궐정(闕庭)에 나가 임금을 만났다. 선조가 그 풍채의 아름다움을 보고 인물을 얻었다고 감탄하였다.

한성부참군에 제수되고, 이어 사재감직장·사간원정언을 거쳐 1590년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연로한 아버지의 봉양를 위하여 사퇴하였다. 그 뒤 사헌부지평, 병조·형조의 정랑을 거쳐 통제사의 막좌(幕佐)로 나갔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1623년 인조반정 뒤에 영광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파직되었다. 뒤에 다시 등용되어 사섬시정·사도시정·승문원판교 등을 역임하고 옥당에 들어가 부교리가 되었다.

1626년(인조 4)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가 여주목사가 되었는데, 1628년 유효립(柳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하동에 유배되었다가 혐의가 없음이 밝혀져 곧 방면되었다.

그 뒤 나이가 71세였으므로 벼슬에서 은퇴하고 오로지 교육에 힘써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1637년 80세에 우로(優老)의 특전에 따라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위계에 올랐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율곡전서(栗谷全書)』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노사집(蘆沙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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