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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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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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우두의 접종과 두묘(痘苗: 우두의 원료)를 제조하거나 종두의양성(種痘醫養成)을 담당하였던 의료사업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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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에 우두의 접종과 두묘(痘苗: 우두의 원료)를 제조하거나 종두의양성(種痘醫養成)을 담당하였던 의료사업기구.
내용

종두소가 설치되기 전에 이미 지석영(池錫永)과 이재하(李在夏)에 의하여 개항 전후부터 1893년 사이에 전주·공주·대구·한성 등에 우두국(牛痘局)이 설치되어 종두를 실시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에 개편된 내각 가운데 내무아문(內務衙門)에 위생국(衛生局)이 설치되어 의약 및 우두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다음해인 1895년에는 내부령(內部令) 제8호로 「종두규칙」를 반포하고, 우두종계소(牛痘種繼所)를 내부 위생국에 설치하여 두묘를 제조하였고, 「종두의양성소규정」을 만들어 수학기간 1개월의 양성소를 설치하였다.

한편, 1898년에는 내부령으로 한성부 5서(署)에 각각 종두소를 설치하였고, 다음해 전국 13개 도에 종두사무위원을 2인씩 두어 모두 26인을 배치하였다.

1900년에는 「한성부종두사관제」를 반포하고 종두사(種痘司)를 한성부에 두어 한성의 5서 및 13도, 1목(牧)의 종두소를 관할하게 하였다. 종두사의 직제는 사장(司長) 1인, 의사 5인, 기수(技手) 2인, 서기 1인으로 구성되었다.

1905년에는 한성종두사의 관제가 폐지되고 그 업무를 내부직할인 광제원(廣濟院)에서 관장하게 하였는데, 그 사무에는 종두사무 및 두묘제조까지 포함되었다. 이것은 종두사무가 여러 갈래, 즉 내부위생국·우두종계소·한성종두소 및 각 지방 종두소로 나뉘어 실시되는 것을 내부직할인 광제원에 통할시키고자 한 것이지만, 종두의 업무가 확대된 것은 아니다.

그 뒤 종두사무는 1907년 「대한의원관제」를 반포할 때에 대한의원으로 이관되었고, 1908년에는 다시 그 사무가 내부위생국으로 이관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79)
「우리나라 두창의 유행과 종두법의 실시」(김두종, 『서울대학교논문집 인문사회과학』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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