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서가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 문종 때로서, 처음에는 영(令) 1인과 승(丞) 2인을 두었다. 충렬왕 때 침원서(寢園署)로 개칭되었으며, 전의시(典儀寺)에 속하면서 승 1인이 줄었다.
공민왕 때 대묘서(大廟署)로 개칭되면서 주부 1인을 증원하였고, 다시 능원서(陵園署)로 고치면서 사(史) 4인과 기관(記官) 2인을 배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 설치하였는데, 그 임무 역시 능침(陵寢)의 정자각과 종묘를 관장하는 것이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도제조 1인, 의정 겸 제조 1인, 영 1인, 직장 1인, 봉사 1인, 부봉사 1인, 이속수복(吏屬守僕) 30인, 고직(庫直) 1인, 사령 6인, 군사 20인으로 하였으나, 1878년(고종 15) 직장과 봉사를 감원하고영 2인을 증치하였다.
1896년 다시 제거 1인, 영 3인, 참봉 1인을 두었고, 1896년 제조 1인을 두고 참봉을 영으로 개칭하여 조선조 말엽까지 종묘와 능침 관리를 담당하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