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중국계 속악인 당악을 의미하였고, 그 말은 우리나라 음악인 향악을 가리키는 우방악(右坊樂)이라는 말의 대칭어로 사용되었다.
좌방과 우방이라는 명칭은 고려 인종초에 이미 쓰였음이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서 확인되며, 좌방악과 우방악을 몰아서 양부악(兩部樂)이라고 불렀음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 이르러 좌방악은 세종 당시 새로 정비된 아악을 뜻하는 것으로 변천되었고, 고려 때 좌방악이었던 당악은 우방악의 향악과 함께 통합되었다.
1457년(세조 3) 좌방악은 장악서의 좌방 악생(樂生)·무공(武工)·재랑(齋郎)들에 의하여 연주되었고, 그 뒤 성종 때 장악원의 좌방 소속 악사 2명과 악생 397명(보수(補數) 100명 포함)에 의해서 연주되었다.
좌방악을 연주하였던 악생들은 조선 후기에 좌방차비(左坊差備)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1746년(영조 22) 195명이 장악원의 좌방 소속 악생들이었다. 고려 때의 좌방악은 송나라에서 수입된 교방악(敎坊樂)과 사악(詞樂)을 궁중잔치에서 사용되는 연주 곡목으로 삼았으나, 조선시대의 좌방악은 여러 제례의식에 쓰인 제례악이었다.
따라서, 장악원의 좌방악은 종묘와 영녕전, 사직(社稷)·선농(先農)·풍운뇌우(風雲雷雨)·선잠(先蠶)·우사(雩祀)·문선왕묘(文宣王廟) 등에서 쓰인 제례아악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좌방악의 전통은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