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승정(僧正)은 중국 남조계통의 승관명으로서, 남조에는 중앙과 각 주(州)에 있었다. 중앙의 승정은 실권이 없고, 유력한 주의 승정이 전권을 장악해 그 지역의 사원을 통할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백제가 중국 남조의 승관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7세기 초엽 일본에 건너간 관륵(觀勒)이 일본의 초대 승정(僧正)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된다.
그러나 주승정에 관한 기록은 893년(진성왕 7)에 조성된 「심원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深源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碑)」에 보인다. 그러나 주승정의 성격이나 역할 등을 잘 알 수 없다.
다만 884년(헌강왕 10)에 김영(金穎)이 찬술한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에서 영암군 승정이 명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남조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곧 군승정과 주승정의 직함을 가진 승려의 활동시기가 9세기 중엽이고, 그 이름이 보이는 「심원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와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의 소재지가 전라도 남원과 장흥지방이다.
또 경덕왕대에 활약한 진표(眞表)가 백제인으로 자처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신라 하대 지방분권적 상황하에 있었던 이 지역 불교계에서 기왕의 신라 지방승관직인 주통과 군통을 옛 백제 때의 명칭인 주승정·군승정으로 일컬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