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의 필사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도서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모두 ‘주역강의(周易講義)’이고, 표제 옆에 ‘계묘선조문백칠십조(癸卯選条問百七十条)’라는 기록이 있다.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는 규장각(奎章閣) 설치와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를 통해 학문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초계문신들에게는 사서삼경을 주제로 과제를 주어 이를 연구하게 하였고, 그 연구 성과들 중 『주역』과 관련된 내용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 『주역강의』이다. 『주역강의』의 편찬 경위는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80권의 『군서표기(羣書標記)』, ‘주역강의오권(周易講義五卷)’조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1783년(정조 7)[계묘] 정조의 조문(條問)과 이에 대한 초계문신들의 답변을 1785년[을사] 규장각신 김희(金憙: 17291800)에게 편찬하게 한 것[4권]과, 1784년[갑진]의 조문과 답변을 1791년(정조 15)[신해] 초계문신 서유구(徐有榘: 17641845)에게 편찬하게 한 것[1권]을 합친 것이 『주역강의』 5권이다. 『주역강의』 5권은 현재 『홍재전서』 제101~105권에 수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도서 1책본은 1783년 170조의 정조의 질문만을 모아 『주역』의 체재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홍재전서』에 수록된 『주역강의』는 『주역』에 대한 정조의 질문과 이에 대한 초계문신들의 답변을 『주역』의 체재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제101권부터 제104권까지는 건(乾)에서 미제(未濟)까지의 64괘와 「계사전(繫辭傳)」 · 「설괘전(說卦傳)」 · 「서괘전(序卦傳)」 · 「잡괘전(雜卦傳)」의 순으로 각 항목별로 문답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 부분의 답변은 1783년에 초계문신으로 선발된 강세륜(姜世綸) · 김계락(金啓洛) · 김희조(金熙朝) · 성종인(成種仁) · 신복(申馥) · 심진현(沈晉賢) · 윤행임(尹行恁) · 이곤수(李崑秀) · 이면긍(李勉兢) · 이익진(李翼晉) 등의 것이다.
제105권은 총론(總論)과 건(乾) · 곤(坤) · 몽(蒙) · 수(需) · 소축(小畜) · 이(履) · 동인(同人) · 대유(大有) · 익(益) · 간(艮) 10괘에 대한 문답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 부분의 답변은 1784년에 초계문신으로 선발된 이서구(李書九) · 정동관(鄭東觀) · 한상신(韓商新) · 한치응(韓致應) · 홍의호(洪義浩)의 것이다.
『주역강의』는 기본적으로 정이천의 『역전(易傳)』과 주희의 『주역본의(周易本義)』의 절충을 통해 의리(義理)와 상수(象數)의 조화를 도모하고 『주역』의 본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군서표기』의 ‘주역강의오권’조에서 정조는 “배우는 자는 『정전』의 의리에 침잠하고 『본의』의 상수를 반복 탐구해서 리(理)가 공허한 리가 되지 않도록 하고 상(象)이 실제의 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근식의 연구에 따르면, 『주역강의』에서 『역전』과 『주역본의』의 견해가 상충되는 13곳 가운데 5곳에서 『주역본의』의 견해를 채택하고 2곳에서 『역전』의 견해를 채택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주희보다 정이천의 견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주역강의』의 기본적 태도는 『주역본의』 위주의 절충이며, 이는 주자학(朱子學)을 정학(正學)으로 존숭한 정조의 학문관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이 책은 정조 재위 시기 조선 유학자들의 『주역』 이해 및 정조의 경학 사상에서 역학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조선 후기의 역학사 및 사상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