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 주열(朱悅)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누천하여 경상도안렴사가 되었다. 뇌물을 좋아하여 백성들에 대한 탐학이 심하였으며, 백성의 물건을 빼앗아 왕에게 아첨하였으므로 조정에서 주인원의 파직을 왕에게 상소하였으나, 왕은 주인원을 총애하여 파직시키지 않았다.
1301년(충렬왕 27) 경상도안렴사로서 이 도의 권농사(勸農使)를 겸임하였는데, 이 때 조정의 대신들이 주인원의 탐학함을 들어 반대하였으나 취소되지 않았다. 벼슬이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