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들을 거느리고 종을 조성하는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이다. 기술직을 박사로 일컬은 것은 삼국시대부터 비롯하였다.
주종대박사는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771)에서 유일하게 보인다. 신종은 혜공왕이 성덕대왕의 공덕을 기리고자 하는 경덕왕의 발원을 계승해 완성하였다. 명문에는 기술적으로 주종을 책임진 ‘鑄鍾大博士 大奈麻 朴從鎰 次博士 奈麻 朴賓奈 奈麻 朴韓味 大舍 朴負缶(주종대박사 대나마 박종일 차박사 나마 박빈나 나마 박한미 대사 박부악)’ 등의 이름이 보인다.
주종대박사는 신라 17관등 중 제10관등의 대나마로서 세 명의 차박사를 거느리고 주종의 책임을 맡았는데, 이들은 대체로 5두품의 신분자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따라서 주종대박사와 차박사의 구분은 신분의 구분보다는 기술의 고하 및 해당 기술분야에서의 연륜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관등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 종을 조성했던 장인으로는 주종대박사·차박사 외에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 725)의 ‘조남택장사(照南宅匠仕) △대사(大舍)’, 황룡사종(皇龍寺鐘, 754)의 ‘이상택하전(里上宅下典)’, 선림원종(禪林院鐘, 804)의 ‘종성재백사(鍾成在伯士) 당사각지사(當寺覺知師)’, 청주연지사종(菁州蓮池寺鐘, 833)의 ‘성박사(成博士)’, 규흥사종(竅興寺鐘, 856)의 ‘대장(大匠) 대나말(大奈末) 양발(梁0xF495) 온금(溫衾)’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진골 귀족의 대택(大宅)의 장인이거나 관등을 지닌 관장(官匠), 또는 승려 장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덕대왕신종의 조성 이후부터는 관등을 지니지 않은 승장(僧匠)이나 일반 장인들이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일컫고 있다. 이는 8세기 말엽부터 9세기 초엽에 이르러 주종기술이 일반장인에게 보급 또는 전수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종래에 관장들에게 국한되었던 박사 등의 칭호가 일반 장인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된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