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전적, 직강, 병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칭
정이(靜而)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1년(효종 2)
사망 연도
1727년(영조 3)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함흥(咸興)
주요 관직
전적|직강|병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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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전적, 직강, 병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이(靜而). 함흥 출신. 주대건(朱大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식맹(朱式孟)이고, 아버지는 단천군수(端川郡守) 주목(朱楘)이다. 어머니는 한여호(韓汝虎)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20세 이전에 향시에 합격했고, 서북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이 덕원에 유배되어 있을 즈음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순릉참봉으로 1679년(숙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가 되었다. 이어 전적·직강 등을 거쳐 예조·병조의 좌랑,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했고, 외임으로 나가 은계찰방(銀溪察訪)·보령현감·이성현감 등을 두루 맡았다.

1689년에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화를 입자 그 문제(門弟)로서 삭직을 당했다가 1694년에 갑술옥사가 일어나 남인들이 실각하자 다시 직강으로 복직, 이어 병조정랑이 되었다.

학문에 뜻을 세워 스승을 정성껏 섬겼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 스승으로부터 “긴장해 있으면서 해이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학여불급(學如不及)’이라는 서증(書贈)과 함께 항상 장려와 칭찬을 받았다. 몸에는 사치, 화려한 것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다 한다.

성품은 화평하면서도 주견이 뚜렷했으며, 자기 인격을 깔끔하게 수양하여 벼슬살이 몇 해 동안에도 집안은 가난하였다. 언제나 산수를 즐겨 명승지를 두루 찾아 구경하였다.

민정중(閔鼎重)은 일찍이 그의 기절(氣節)을 기렸고, 이단하(李端夏)는 그의 학문적 업적을 칭찬하였다. 권상하(權尙夏)·정호(鄭澔) 등은 그를 허여(許與)하였다. 특히, 정호가 북로(北路)를 안찰할 때 그를 교수로 임용하기를 청하였다.

1685년에 서북인재들에 대한 통청(通淸)이 거론되면서 그가 제일 먼저 추천되었으나 크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서북 출신에다가 역적으로 몰려 죽은 작은아버지 때문에 그도 30여 년 간 불우하게 지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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