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숙종 3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오도전(吳道全)·서유원(徐惟遠)·이동철(李東哲)·황보헌(皇甫憲)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훼철을 면하였다고 한다.
경내 건물로는 3칸의 현의사(賢義祠), 6칸의 명교당(明敎堂),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2칸의 전사청(奠祀廳), 신문(神門), 6칸의 주소(厨所) 등이 있다. 묘우(廟宇)인 현의사에는 오도전·서유원·이동철·황보 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명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는 제원들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들의 기거처로 사용되고, 신문은 향사시 제관(祭官)들의 출입에만 사용된다.
전사청은 향사시 제물을 장만하여 보관하는 장소로, 주소는 서원을 지키는 고자(庫子)의 기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5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