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담양군 고서면 소재지에서 약 2㎞ 떨어진 광주호 아래 쪽에 무등산과 맥을 같이하는 향백산이 있고 그 아래 속칭 ‘잣쟁이’라 불리우는 분향리에 창녕조씨(昌寧曹氏) 동족촌이 있다. 죽림재는 마을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 죽림(竹林)조수문(曺秀文, 1426∼?)이 건립한 정사로서 대대로 창녕조씨 문중의 강학장소로 이용되었다. 초창건물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시 귀중한 문서와 함께 소실되었고, 1623년(인조1)에 죽림의 6대손인 삼청당(三淸堂)조부(曺簿)에 의해서 중건되었다.
그후 죽림과 그 아들인 운곡(雲谷)조호(曹浩)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8년(숙종 34)에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죽림사(竹林祠)가 건립되었고, 1751년(영조 27)에는 죽림재와 같은 위치로 죽림사를 이건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원되었으며, 현재 4위(竹林曺秀文, 雲谷曺浩, 三淸堂曺簿, 簫隱鄭敏河)를 배향하고 있다. 죽림조수문은 어려서부터 점필재(佔畢齋)김종직(金宗直)의 문하(《동국문헌록》에는 江湖金淑滋의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음)에서 학문을 수학한 뒤 죽림정사를 건립하여 후진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죽림재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전면의 2칸은 개방된 마루를 두고 후면의 2칸은 방을 두었다. 낮은 시멘트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두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바로 장혀를 두고 직접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2칸 방의 정면에는 띠살창호의 2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살창을 설치하였다. 건물 좌측에는 쪽마루를 달아내어 전면의 마루에서 측면으로의 통행이 가능하게 하였고 우측면에는 슬레이트로 벽과 지붕을 만들어 부엌을 구성하였다. 홑처마를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관련유적으로는 창녕조씨 문중의 취사당(聚斯堂 : 죽림사 강당,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세일재(歲一齋 : 曺由道의 墓閣, 1899년 건립,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충효각(忠孝閣 : 曺簿의 孝子旌閭閣, 1640년 건립,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 죽림사유허비(竹林祠遺墟碑), 조완정기실비(曺浣亭紀實碑), 증암수확수계원영사비(贈岩水確水契員永思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