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산성이다. 고려 1236년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해서 승리한 곳이다. 이 산성은 한양으로 통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 구조이다. 내성은 조선 시대, 중성은 신라 시대,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되었다. 전체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죽주산성은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 산성.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체성벽은 풍화된 암반의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삭토하여 기초를 조성하고 경사진 지반에 의지하여 석재로 외벽을 쌓았다. 다시 석벽 내부는 점토를 다져 넣어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계곡부를 통과하는 지역은 외벽과 내벽을 모두 축조하여 더욱 단단하게 쌓았다. 성벽의 높이와 너비는 1:1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또한 외벽을 따라서 외항(성벽 앞에 땅을 파거나 석재로 도랑을 만든 방어시설)이 둘러쳐 있는 것도 특징적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죽주산성의 성벽은 영남지방의 신라산성의 형식이 한강 유역으로 전달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성벽은 신라시대 체성벽 상면에 축조되었다. 대부분 무너지고 일부에 흔적만 보이고 있다.
성내부에서는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계단식 저수시설 8기가 출토되었다. 물이 흘러내려가는 낙차를 고려하여 계단식으로 저수시설을 배치하여 물을 활용하고 조경시설도 꾸몄다. 저수시설 내부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와 토기 및 무기류와 공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안성 죽주산성』(한백문화재연구원, 2012)
- 『안성 죽주산성 남벽 정비구간 발굴보고서』(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6)
- 『안성 죽주산성 지표 및 발굴조사보고서』(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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