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통

  • 역사
  • 지명
  • 남북국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김해와 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7년
  • 서영일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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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김해와 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개설

『삼국사기』 권 37 지리지 마지막 부분에 동해통, 북해통, 해남통, 염지통, 북요통 등 교통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오통(五通)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9주5소경을 설치하였다. 지방통치를 위해서 각 주의 치소와 소경 등을 왕래하는 교통로도 정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동해통이란 이름은 동해바다를 따라서 이어지는 교통로란 의미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에는 현재의 포항과 울산 등 경상도 일대의 동해 바다를 '동해'라 불렀다. 따라서 동해통을 현재의 동해안을 따라서 원산을 거쳐 발해로 연결되었던 교통로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신라시대 강릉에는 북소경(北小京), 삼척에는 북진(北鎭)등을 설치하였고 발해는 북국(北國)이라고도 불렀다. 영동지역 및 원산만 일대를 북쪽으로 인식하고 그 일대 바다도 북해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산으로 가는 교통로는 북해통으로 불렸고 동해통은 울산, 부산, 김해, 진주 등으로 통하는 교통로로 보인다.

변천과 현황

동해통은 신라초기부터 낙동강 하구로 진출하면서 개척되었다. 금관소경과 강주가 설치되면서 이 방향 교통로를 동해통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 「신라통일기 육상교통망과 오통」(한정훈, 『부대사학』 27, 2003)

  • - 「신라오통고」(서영일, 『백산학보』 52, 1999)

  • - 「고대국가의 성장과 교통로」(이도학, 『국사관논총』 74,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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