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천문집 ()

죽천집
죽천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김진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3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김진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3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73년(영조 49) 김진규의 아들 김양택(金陽澤)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양택이 쓴 어제(御製) 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35권 12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부(賦) 3편, 권2∼5에 시 461수, 권6에 기(記) 4편, 제(題) 3편, 잡저 5편, 권7에 연주(筵奏) 9편, 의주(擬奏) 3편, 권8에 책문(策問) 4편, 권9에 반교문(頒敎文) 3편, 교서(敎書) 2편, 서계(書契) 2편, 권10에 옥책문(玉冊文) 4편, 전(箋) 7편, 서(序) 6편, 권11·12에 제문 60편, 권13에 서(書) 13편, 권14∼28에 소(疏) 170편, 권29에 차(箚) 3편, 권30에 계(啓) 17편, 권31·32에 묘표 10편, 권33·34에 묘지명 13편, 권35에 행장 2편, 비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 가운데 「제사임당초충도후(題師任堂草蟲圖後)」는 이이(李珥)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초충도」 7폭에 대한 해설이며, 「제우암선생서후(題尤庵先生書後)」는 ‘우정조수(虞庭朝獸)’라는 송시열(宋時烈)의 서묵(書墨) 4자에 대한 해설이다. 잡저 가운데 「독백사기서순시사(讀白沙記西巡時事)」는 이항복(李恒福)이 임진왜란 때 쓴 「서순기(西巡記)」를 읽고 독후감을 쓴 것이다.

연주 가운데 「논일본국서칭호면주(論日本國書稱號面奏)」는 대일본국서(對日本國書)에 대한 칭호 문제를 다룬 것이다. 「논탕춘대설창축성득실면주(論蕩春臺設倉築城得失面奏)」는 창고를 설치하고 성을 쌓는 일 등의 정책을 논의한 것이다. 서계의 「주상전하송일본국왕서계(主上殿下送日本國王書契)」와 「예조당상답대마도주이관백복호사(禮曹堂上答對馬島主以關白復號事)」 등은 모두 일본이나 대마도에 보내는 서계로, 서식이 틀리니 개서(改書)하라는 내용이 특징적이다.

서(序) 가운데 「회양지서(淮陽誌序)」·「정축구황록서(丁丑救荒錄序)」·「무인견폐록서(戊寅蠲弊錄序)」 등은 회양수(淮陽守)로 있었던 것을 계기로 읍지(邑誌)와 구황록을 편찬하게 되었다는 경위를 서술한 것이다. 「강도지서(江都誌序)」는 강화도의 역사적인 사실을 특징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제문 중에는 정철(鄭澈) 등 당시의 상신(相臣: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총칭) 및 석유(碩儒)들에 대한 제문이 많이 들어 있다.

소는 이 책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당시 노론을 대표한 정치적인 발언이 대부분이다. 「강도진폐소(江都陳弊疏)」에서는 강화도의 폐해를 들어 설명하고, 아울러 요새지에 대한 국방안(國防案)을 상신한 것이다. 별단(別單)에 수비·군제·양향(糧餉)·기계·풍속 등 5조항을 열거하여 국방책에 대한 의견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계 가운데 「해구방수지책하순후서진소회계(海寇防守之策下詢後書進所懷啓)」는 왜구 방어책에 대한 견해를 소상하게 밝힌 것이다. 비명의 「문렬공중봉조선생청주전장기적비(文烈公重峰趙先生淸州戰場紀蹟碑)」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었던 조헌(趙憲)이 당시 청주 전투에서 세운 전공에 대한 기적비문으로, 임진 의병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의의와 평가

대표적인 노론 정객의 문집으로 17세기의 당쟁사·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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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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