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활자본. 손자 주교(胄敎)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휘영(李彙榮)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36수, 만(輓) 14수, 권2는 시 48수, 서(書) 17편, 권3에 서(序) 2편, 기(記) 5편, 발(跋) 5편, 명(銘) 2편, 전(箋) 5편, 표(表) 1편, 잡저 3편, 권4에 상량문 4편, 축문 6편, 제문 14편, 애사 3편, 권5에 행장 7편, 권6에 부록으로 행장 1편, 창수시(唱酬詩) 6수, 만장 16편, 제문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어가 단아하고 의미가 중후하며, 경치나 풍물보다는 감회를 읊은 것이 많다. 80세가 되어 나라에서 계자(階資)의 은전이 내렸을 때 지은 칠언시 6수에는 일개 서생으로서 장군의 호를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잘 나타나 있다. 종제 사경(思絅)에게 화답하여 지은 오언시 8수와 칠언시 10수는 자기 방에 있는 병풍의 그림을 보고 읊은 것으로 그 묘사가 흥미롭다.
서(書)의 「상성호이선생서(上星湖李先生書)」는 이익(李瀷)에게 우리나라에 제독이라는 관직이 있었는지 질의한 것이고, 채제공(蔡濟恭)에게 보낸 글은 자기 선조의 유고의 서문을 지어 준 데 대하여 감사하는 내용이다.
잡저의 「답이강서원문(答伊江書院文)」은 도서재공(都鋤齋公)을 이강서원에 배향하겠다는 서신에 대하여 답한 글이다. 사우연원(師友淵源)으로 보아 그의 배향은 사람들의 희망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