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화 ()

정치
개념
특정 지역에 특정한 국가행위의 침해를 규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특수한 국제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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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중립화는 특정 지역에 특정한 국가행위의 침해를 규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특수한 국제적 지위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제의한 국외중립론을 비롯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립화 방안의 적용이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1953년 제네바회의에서 한반도 중립화 방안이 국제적 현안문제로서 부각되었다. 중립화된 국가는 자국의 안전과 독립을 확보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고, 보장국들은 외교적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립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의 재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 자주 제기된다.

정의
특정 지역에 특정한 국가행위의 침해를 규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특수한 국제적 지위.
개설

지정학적 위치나 전략적 가치로 말미암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되는 지역이나 또는 그 지역에 위치한 국가에게 이해 당사국들 공동의 협약으로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그 지역(또는 국가)을 국제분쟁의 대상에서 제도적으로 격리시키려는 국제적 세력관리 방안이다.

연원 및 변천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입지조건 때문에 역사적으로 외부세력들의 경쟁적 간섭에 시달림을 받아왔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주변 세력관계가 바뀔 때마다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위상을 결정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서 중립화 방안의 적용이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다.

먼저 개항 이후 구한말에는 서세동점(西勢東漸)과 더불어 전통적인 국제질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이 쟁점으로 부각될 때마다 국제적 관리방안의 일환으로 중립화론이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개항 직후 전통적인 청나라 세력과 신흥 일본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제기된 것으로는,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제의한 국외중립론(國外中立論)을 비롯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직후 독일의 총영사 대리 부들러(Budler, H.)가 조선 정부에 권고한 영세중립론(永世中立論), 그리고 1885년 거문도사건 직후 다변적인 세력관계 상황에 착안해서 유길준(兪吉濬)이 제기한 중립화론(中立化論) 등을 들 수 있다.

청일전쟁(淸日戰爭)이후 승전한 일본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제기된 것으로는 미국인 고문 샌즈(Sands, W.F.)가 조선 정부에 권고한 스위스 모형의 영세중립론과 1900년 의화단사건(義和團事件) 직후 일본 · 러시아 사이의 협정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려 한 러 · 일 · 미 3국 보장 하의 한반도 중립화안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고비로 한반도가 일본에 예속되는 과정을 밟게 됨으로써 이 시기에 제기된 한반도 중립화론은 모두가 무위의 공론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후처리의 일환으로 연합국 수뇌들 간에 한반도의 국제적 존재양식을 새로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립화와 유사한 국제적 공동관리(신탁통치) 방안이 공식적으로 논의 · 모색되기도 하였지만, 때마침 대두된 미 · 소간 냉전대립으로 말미암아 남 · 분단으로 이어져 한반도가 국제적 냉전구조의 일부가 됨으로써 끝내 공식화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유례없는 국제전 형태의 ‘한국전쟁’을 계기로 열리게 된 제네바회의(1953)에서 동 · 서 냉전체제의 재조정 문제가 초미의 과제로 대두됨에 따라 여기서 오스트리아 중립화 방안과 더불어 한반도 중립화 방안이 국제적 현안문제로서 부각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미국 정부와 민간에서 제기된 것으로는 노우랜드(Knowland, W.F.) 상원의원 및 덜레스(Dulles, J.F.) 국무장관의 구상(1953), 맨스필드(Mansfield, M.) 상원외교분과위원장에 의한 오스트리아 모형의 한반도 중립화 방안(1960), 그리고 1952∼1953년 재미교포 김용중(金龍中)과 재일교포 김삼규(金三奎)가 각기 제기한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60년 10월 미국 상원외교분과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맨스필드가 제기한 오스트리아 모형의 한반도 중립화 방안은 국내에 파급되어 4 · 19 이후의 통일논의에 큰 반향을 주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에 의한 동 · 서 해빙추세에 따라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정책이 공식화되면서 이에 수반하여 한반도의 ‘비핵화와 비군사화’ 및 주변 4강의 남 · 북한 교차승인안과 더불어 주한미군의 철수를 위한 하나의 정책대안으로서 중립화 통일방안이 미국의 정부와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연구 · 검토되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의 완강한 잔존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공식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05년 ‘북한 핵문제’의 돌발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초미의 과제로 부각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안보협의체’로서 남 · 북한과 주변 4강이 함께 참가하는 ‘6자회담’이 개최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더불어 이 지역의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제반 과제들이 현안문제로 제기되었고, 여기서 그 포괄적 해결방안의 일환으로 통일독일 모형의 한반도통일방안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동 · 서 냉전체제 재조정을 위한 제네바회의(1953) 이후, 김삼규, 김용중 등 한국인에 의해서 제기된 중립화 통일론은 그 뒤 김삼규에 의해 간헐적으로 언급되는 형식으로 이어져 오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재미교포 학자 황인관(黃仁寬)과 국내학자 강광식(姜光植) 등에 의한 체계적 연구물을 통해 그 적실성을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현실적 적용을 위한 공론화와 정책화의 계기를 아직도 얻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내용

이런 의미의 중립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된 역사적 사례로는 스위스(1815) · 오스트리아(1955)의 중립화를 들 수 있다. 중립화는 일반적으로 중립화 협정과 같은 조약 형식을 취하는 것이 통례인데, 여기서 중립화 협정에 참가하는 이해당사국들 간에는 상호규제효과를 가지는 조약상의 의무관계가 설정된다.

우선 중립화된 국가는 자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자국의 중립국 지위에 손상을 가져올 위험이 있는 어떤 동맹이나 국제협정에도 참가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에 상응해서 이 협정에 참가하는 모든 외부세력들은 보장국으로서의 제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즉, 모든 참가국들은 중립화된 국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하므로, 군사적 개입은 물론 내정간섭도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이를 위반하는 국가에 대해서 공동으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따라서 중립화는 참가국들 모두에게 각기 나름대로 유용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중립화된 국가에게는 외부세력들의 상호 견제관계를 통해서 자국의 안전과 독립을 확보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고, 보장국으로 참가하는 외부세력들에게는 그 지역이 다른 경쟁세력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또 상호격돌의 위험을 예방하거나 회피하는 외교적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용성 때문에 중립화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요인에 의해 분단된 국가의 재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 자주 제기된다. 중립화를 통해서 외부세력들의 경쟁적 간섭요인을 제도적으로 해소하여 재통일을 위한 국제적 여건 조성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황

개항 이후 한반도 주변 세력관계가 바뀔 때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제기되어 온 한반도 중립화론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았거니와, 그것들은 모두가 현실화되지 못한 채 개인적 구상이나 논의로서만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냉전구조 속에서 ‘중립화’가 비현실적이며 위험스런 발상이라는 낙인이 찍힘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의 대상으로 기피되었고, 1970년대 이후 동 · 서 해빙추세 속에서는 남 · 북한 대립관계의 완강한 잔존으로 말미암아 오래도록 공론화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 말 유럽에서는 ‘2+4회담’이라는 ‘다자안보협의체’를 통해 통일독일을 위한 국제적 존재양식이 마련됨으로써 유럽 전체의 평화와 더불어 분단된 독일이 마침내 통일을 실현하게 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냉전구조의 잔존으로 아직도 그 전도가 요원하다.

의의와 평가

중립화는 중립화될 국가 내부세력의 통합에 의한 자체중립화(self · neutralization)와 더불어 보장국으로 참가하는 외부세력들의 공동보장이 효과적으로 성립 · 유지되는 경우에만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분단국가의 재통일방안으로서 중립화의 성공적 적용을 위해서는 내부세력의 자존능력과 통합성이 초미의 과제로 요구된다. 내부세력의 자존능력과 통합성 여하에 따라 외부세력들의 공동보장 의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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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화정치론(中立化政治論):한반도(韓半島) 적용가능성(適用可能性) 탐색(探索)』(강광식, 도서출판 인간사랑, 1989)
「남북한(南北韓) 분단체제(分斷體制)의 복합적(複合的) 갈등구조(葛藤構造)와 통일지향적(統一指向的) 체제모형(體制模型) 탐색(探索)」(강광식, 『한국정치학회보』 42집 2호, 2008)
One Korea via Permanent Neutrality(Hwang, In K., Cambridge: Schenkman Books Inc., 1987)
Neutralization and World Politics(Black, Cyril E., Folk, Richard A., Knorr, Klaus, and Young, Oran R., ed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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