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때 각문(閣門)이라 불렀는데 1275년 충렬왕이 즉위하여 원나라의 관부 명칭과 직제의 참람함을 피하여 개정하여 통례문(通禮門)이라 하였다.
그 뒤 1298년(충렬왕 24)에 각문이라 하였다가 1308년에 충선왕이 다시 즉위하여 중문으로 바꾸었다. 관원은 사(使, 정3품) 2인, 부사(副使, 정4품) 2인, 판관(判官, 정5품) 2인, 사인(舍人, 정6품) 2인, 지후(祗候, 종6품) 14인(4인은 낭장이 겸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다시 통례문으로 복구되었으며, 1356년(공민왕 5) 문종 관제로의 복구시책에 따라 다시 각문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서는 통례원(通禮院)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