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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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이 쓰는 그릇과 진보(珍寶)를 담당하던 관청.
이칭
  • 이칭공조서(供造署)
제도/관청
  • 상급 기관
  • 설치 시기995년(성종 14)
  • 폐지 시기1372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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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왕이 쓰는 그릇과 진보(珍寶)를 담당하던 관청.

내용

본래는 소부감에 소속되어 잡직서(雜職署) · 도염서(都染署) · 장야서(掌冶署)와 함께 편성되었다.

995년(성종 14) 관제를 정비할 때 6부(部)와 시(寺) · 감(監)의 소속 관청을 대폭 줄여 10개서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상서이다. 목종 때 영(令)을 두었고, 문종 때에는 영(정6품) 1인, 승(丞, 정8품) 2인과 이속(吏屬)으로 사(史) 6인, 기관(記官) 2인, 산사(算士) 1인이 배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 관부명이 공조서(供造署)로 개칭되었으나, 명종 때 김광부(金光富)의 관직이 중상서승으로 확인됨으로써 공조서 이전에는 중상서로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1356년(공민왕 5)과 1369년에 중상서로 복구되고, 1362년과 1372년에는 또다시 각각 공조서로 개칭되어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 「고려전기(高麗前期)의 사(寺)·감연혁고(監沿革考)」(박천식, 『전북사학(全北史學)』5,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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