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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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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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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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내용

왕건(王建)이 고려를 세운 직후에 신라의 옛 위계(位階) 사용을 벗어나서 태봉(泰封)의 관계를 이어받아 919년(태조 2)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려 초기의 독자적인 공적 질서체제로서 태조 왕건의 직속 부하를 중심으로 하고 고려왕권에 복속한 친고려적 정치집단인 호족세력을 조직한 문·무관의 위계였다.

이 관계는 936년 후삼국 통일을 전후하여 완성되었으며 중윤(中尹)은 9품계 16관계 가운데 제16위에 해당된다. 그 뒤 광종 때 중국의 문산계(文散階)가 들어와 관계와 같이 사용되었는데 주로 비관인층·지방호족들에게는 관계만이 적용되었고 중앙관인층은 문산계와 관계를 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995년(성종 14)에 중국식 문산계로 대치되어 향직(鄕職)으로 변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시대 관직·관계 연구』(박용운,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고려초기 관계의 성립과 그 의미」(김갑동,『역사학보』117, 1988:『나말여초의 호족과 사회변동연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0)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朝鮮學報』41,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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