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김방걸(金邦杰)의 셋째 아들인 김원중(金遠重)이 천곡(川曲)으로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원래는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이 지역이 수몰되어 199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안채는 분가 때(1700년대)의 건물로 추정되나 사랑채는 현 소유자 김원택(金源宅)의 할아버지가 1920년에 크게 개축한 것이다.
□형 안채와 ㅗ형 사랑채 및 중문간채가 튼 □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마당 왼쪽에 외양간을 설치하였다. 안채의 오른쪽에 방앗간을 설치하였고, 담 밖 뒤쪽 낮은 언덕에 제청(祭廳: 사당)을 배설하였다. 안채의 가운데는 마당 쪽으로 개방된 정면 3칸의 대청이 있다.
대청의 왼쪽에 접하여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부엌 도합 4칸이 마당 쪽으로 뻗어내려 □형을 이루었으며 대청의 오른쪽 끝에 상방(上房) 1칸이 꾸며져 있다.
사랑채의 사랑마루는 정면 2칸으로 전면에 4분합문을 달아서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왼쪽에는 정면 2칸의 사랑방이, 오른쪽에는 1칸의 감실방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감실방의 앞쪽만 한단 더 높이고 헌함을 돌려서 누마루처럼 꾸몄다.
사랑방 뒤편에는 부속마루방과 내정(內庭)으로 통하는 샛마루를 두었고, 사랑마루방 뒤에는 샛방과 책방을 설치하였다. 감실방의 뒤칸에 설치한 감실은 줄을 당겨서 상하로 승강(乘降)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놓아 흥미롭다.
샛마루와 샛방 뒤편에는 모방과 고방을 직각으로 돌출시켜서 안마당을 향하여 배치하고 출입하게 하였다. 사랑방의 왼쪽에 접하여 지붕이 한단 낮은 중문간채가 일자로 연결되었는데 중문간 1칸, 아랫방 2칸, 아랫마루방 1칸의 순으로 배열되었다.
행랑채는 5칸의 어간(御間)을 솟을박공지붕으로 올리고 중턱대문을 달았으며 좌우에는 방과 고방을 각 1칸씩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외벽은 검은색이 나는 냇돌을 방화벽처럼 백회로 곱게 쌓아 올렸다.
안채 대청의 보간은 1칸으로 너비가 좁은 편이며 자연색 초석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상부 가구(架構)는 3량가(樑架)로 각대공(角臺工) 위에 마룻대를 올렸다.
안방부엌의 부뚜막 윗벽에는 벽돌 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5개소 내어서 구들골이 막혔을 때 뚫을 수 있게 하였다. 평소에는 벽돌로 막아놓았고, 재나 그을음은 윗목의 구들골 측면에서 끌어낼 수 있게 청소구를 설치하였다.
사랑마루방의 상부는 5량가로 종보 위에 원형(圓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우고 마루도리를 올렸다. 이 집은 사랑마당 · 안마당 · 뒷마당 등 마당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건물과 담장을 경계로 명확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영역의 구분을 위한 공간분리 전통을 잘 이행하고 있는 좋은 예로, 주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당시 명칭은 지례동 오류헌(知禮洞 五柳軒)이었다. 명칭변경 요청에 따라, 국가유산 성격과 소재지를 적시하기 위해 2009년 6월 16일 안동 오류헌 고택(安東 五柳軒 古宅)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