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

사회구조
개념
같은 지방 출신자끼리 동아리를 지어 다른 지방 출신자들을 배척, 비난하는 사회병리현상. 지역색.
이칭
이칭
지역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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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같은 지방 출신자끼리 동아리를 지어 다른 지방 출신자들을 배척, 비난하는 사회병리현상. 지역색.
개설

전통사회에서 개인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강한 귀속감을 가지고 있었다. 혈연집단으로 가족과 친족, 일부 인척까지 포함하는 친척부터 지연집단으로 동향인 및 같은 지방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자기와 관계 깊은 집단들에 강한 애착심을 느껴왔다. 이러한 귀속감과 애착심은 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의 토대를 이룰 뿐 아니라 자기가 소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심과 편견을 가지기 쉽다.

지역주의는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한 지역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기도 하지만, 자기 지역에 대한 긍정성이나 귀속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배타적 거리감을 특징으로 하기도 한다.

즉 지역주의는 자기지역 중심주의로서 그것이 긍정적으로 전개될 때에는 지역의 주체성 및 자율성을 지향하는 의미를 가지며, 반면에 부정적으로 전개될 때에는 지역집단별 이기주의의 의미를 갖는다. 종래에 지역주의를 ‘지방색(地方色)’이라고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역사적으로 지역주의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방편으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흔히 색목(色目)을 따진다고 할 때 그것은 분당(分黨)을 따지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속한 붕당(朋黨)이 어느 파냐라든가, 자기가 태어난 고장이 어느 지방이냐 등이 문제가 된다.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권·백제권·신라권이 우리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은 끊임없이 신라의 통치권에 맞서 부흥운동을 벌였고, 경주 중심의 차별정책에 대하여 맞서왔다.

그 뒤 고려태조왕건(王建)은 고구려권·백제권 유민들의 힘을 합하여 신라를 무너뜨렸으나 신검(神劍)의 끈질긴 저항에 감정을 품고 백제권 유민에 대하여 차별의 굴레를 씌웠다. 이른바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이런 폐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지역의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 함경도를 중심으로 이징옥(李澄玉)·이시애(李施愛)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이를 계기로 함경도를 비롯하여 평안도·황해도에 이르는 서북 인사들은 중용을 제한받았다. 그리하여 19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은 거의 벼슬을 하지 못하였으며, 학문과 벼슬을 동일시하던 봉건사회에서 문화의 불모지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 중기에는 호남지방에 대한 차별이 가해졌다. 직접적 동기는 정여립사건(鄭汝立事件)으로, 정여립은 전주 출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호남지방 인사를 중심으로 일대 모반을 꾀하였다는 것이다. 이 모반사건은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에서 배태된 것이었지만, 이로 말미암아 호남지방을 반역향으로 규정하여 중앙 정계에서 이곳 인사들을 대부분 등용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경상도에 대한 차별이 가해졌다. 노론 중심의 기호지방과의 정권투쟁에서 밀려난 탓에 벼슬길이 거의 막혔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서는 남다른 유대의식이 강하였고 집단화의식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차별에 맞서 자기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차차 하나의 파벌을 이루게 되었다. 결국 조선시대는 특정 지역만이 벼슬을 독점하였고 모든 기득권을 누렸다.

그것도 기호지방의 문벌이 빛나는 노론 계열에 국한해서였다. 이러한 문벌·학벌·지벌은 조선시대 당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당쟁은 지배층 사이에서 시비를 가리거나, 정권을 잡거나, 때로는 기득권을 계속 독점적으로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일어났으며, 이것이 끝내 우리나라 파벌의 큰 덩어리가 되었다.

즉, 전통사회에서의 지역주의는 정치적 갈등의 산물이기도 하였지만, 정치적 갈등의 배경을 형성한 것 또한 지역주의였다.

자연적 환경에 의한 사회적 연결망 단절 또한 지역주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각 지역마다 자연적·사회적 생활 조건의 차이에 따라 독특한 생활양식을 형성하여 일종의 제노포비아현상(xenophobia)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곧 민족사회의 유기적 공감대 형성을 방해하는 작용을 하였으며, 사실 판단의 객관적 근거를 파괴하는 작용을 하였다. 예컨대, 같은 양인(良人)이라 하여도 경상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에서 동학농민봉기에 대하여 각각 상이하게 해석한다는 점이 단적인 예이다.

내용

오늘날의 파벌은 과거처럼 정치제도나 국가정책으로 결정되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것이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파벌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파벌이 남북현상으로 나타난 반면 오늘날은 동서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경상도와 전라도는 신라권과 백제권으로 말할 수 있고 지역적으로 영남·호남으로 불리어 왔다.

이 두 지역은 면적·인구·산업·인재 면에서 서로 팽팽한 관계에 놓여 있어서 때로 경쟁의식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인 면에서 농경사회에서는 호남 지역이, 산업사회에 들어서는 영남 지역이 우위를 차지하였다.

경쟁의식이 차차 악성 파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근현대 이후이다. 근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특정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함에 따라 한층 고조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권은 지역주의를 정치권력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전략 기제로 활용하여 왔다.

이러한 양상이 처음 본격화한 것은 1971년 대통령선거였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1987년, 1992년, 1997년의 대통령선거, 1990년, 1994년, 1998년의 국회의원선거를 통해서는 영남과 호남이라는 기존의 지역주의 틀에 충청권이라는 새로운 요소까지 덧붙여졌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전면 등장했던 지역주의는 이후 우리 정당정치의 틀을 주조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대 선거의 결과는 우리 정치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심각하게 드러난 이른바 3김(金)의 대결과 그로 인한 특정 지역민의 특정 지역 출신 정치인에 대한 몰표현상은 지역주의야말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망국병’이라는 평가까지 받도록 하였다.

정치를 통하여 강하게 표출된 지역주의는 점차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사회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의식들이 지역주민 사이에 팽배하게 된 것이다.

지역주의는 현대에 와서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이용됨으로써 사회통합의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동한 것이다. 즉 지역주의가 다원화를 통한 사회적 민주성 보장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회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지역간 격차는 지역감정으로까지 확대·발전하였다.

이러한 지역주의는 가족주의적 사회편성 원리와 관계된다. 즉 같은 지역민끼리 상호보험 체계를 형성하여 자기들 이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의식 하에 상호 협동하는 반면, 다른 지역민에 대해서는 극도의 배타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판단에 있어서도 다른 지역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편견에 지배받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여러 단체·조직의 편성원리에서 엄연한 사실로 나타남으로써, 근대 사회의 조직원리인 업적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여 합리적 사회질서의 형성을 지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지역주의 문제는 사회적 다원성, 민주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사회발전을 위한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근래 양식있는 인사들은 이런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또 두 지역의 도시 사이에 스포츠를 통한 교류 등으로 이런 점을 해소하려는 시도도 있다.

40여년 만의 지역간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지역주의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지역주의는 해소되기 쉽지 않았지만, 민주정부 10년을 지나면서 지역주의 및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는 강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영남지역 인사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영남지역 개발을 약속하고, 선거제도 변경 등의 노력을 하였다. 노무현 정부 역시 행정수도 이전, 공기업 및 공공행정기관 지방 이전, 낙후지역 재정 지원 등 국가균형발전을 주요 국정목표로 설정했고, 선거제도 변경(중대선거구제와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을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지역주의 및 지역감정은 오래 전부터 한국사회의 통합과 민주정치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지역주의가 지역이기주의로 변질되고, 이데올로기화 되어 정치 및 사회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가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으며, 사회개혁과 발전을 위해 최근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택리지(擇里志)』
『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갈등』(한국사회학회, 성원사, 1990)
『한국사 1∼7』(진단학회, 1959∼1965)
집필자
김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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