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 197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이다.
당초는 1737년(영조 13)에 이곳에 영당을 건립하고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846년(헌종 12) 지산사를 새로 건립하여 최치원을 주벽으로 하여 최운하 · 최향안 등을 모셔오다가 1886년(고종 23)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영당만이 남고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1922년에 새로 복원된 것이다. 지산재는 당시 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높은 기단에 다듬은 돌 초석을 두고 전면에는 원주, 그 외에 다른 기둥은 방주를 세웠다. 중앙 2칸은 대청이고 좌우 칸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강당 양편 좌우로는 동재 · 서재가 배치되었는데 모두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집으로 기둥은 방주이며 간결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영당은 내삼문을 지나 후정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부연(浮椽)이 있는 겹처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