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우왕 14) 전주원수로 왜구를 격파하였고, 1389년(공양왕 1) 전라도절제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5월에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귀양갔다.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전결과 노비가 하사되었다. 1393년(태조 2) 전라도절제사로서 왜구 침입을 방비하고, 왜구가 물러가자 군사를 재점검하고 군적(軍籍)을 만들어 올렸다. 1395년 서북면병마도절제사·평양윤에 임명되었다.
1397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로서 해도조전도절제사(海道助戰都節制使)가 되었다. 1399년(정종 1) 왜구가 서북면의 선주·박주를 침구하니 조전절제사로서 서북면에 파견되었다. 태종 때 검교문하찬성사(檢校門下贊成事)가 되어 죽었다. 시호는 양간(襄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