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형조전서, 이조참의, 공안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424년(세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의|공안부윤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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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전서, 이조참의, 공안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88년(창왕 1) 8월에 전 판사(判事)로서 유구국(琉球國) 사신의 영접사가 되어 사신을 접반하였고, 공양왕이 즉위하려고 남경(南京)에서 송도로 돌아올 때 길일을 가려서 돌아오려고 하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정습인(鄭習仁)과 함께 옳지 않음을 간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우상시(右常侍)가 되고 1391년 정월에 윤구택(尹龜澤)을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로 제수한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았다 하여 귀양갔다가 10월에 돌아왔다. 1401년(태종 1)에 좌사간으로서 대사헌 이지(李至)를 탄핵하였다가 광주(廣州)에 안치되었다.

곧 풀려나 다음해 형조전서로서 만산군(漫散軍) 임팔랄실리(林八刺失里)를 압송하여 요동에서 명나라의 만산군 추쇄사(推刷使)에게 넘겨주고 돌아왔다. 1409년 8월에 이조참의가 되고 세종 때에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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