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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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현성
질현성
건축
유적
문화재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삼국시대 내탁외축 구조로 축조된 테뫼식 성곽. 산성.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질현성(迭峴城)
지정기관
대전광역시
종목
대전광역시 시도기념물(1989년 03월 18일 지정)
소재지
대전 대덕구 비래동 산31-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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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삼국시대 내탁외축 구조로 축조된 테뫼식 성곽. 산성.
내용

1989년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1,107㎡, 둘레 약 800m. 현재 문지(門址)·수구지(水口址)·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안으로는 흙을 다져 쌓고 밖으로는 돌을 쌓는 내탁외축(內托外築)한 규모가 큰 테뫼형산성(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으로, 동쪽 성벽 일부는 안팎으로 돌을 쌓는 협축(夾築)을 하였다.

이 성은 오늘날의 대전과 회덕 방면에서 동쪽으로 충청북도 회인(懷仁)과 문의(文義) 방면으로 통하는 요로를 지키기 위하여 백제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성벽의 높이는 1.5m이고, 석루(石壘)의 상부 너비는 4.2m이며, 남문지의 너비는 약 6m, 동문지의 너비는 약 3.5m이다.

성안에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샘물이 나오고 있다. 성의 동북쪽 성벽은 90×20㎝ 정도의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되어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시대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신라시대 토기조각과 조선시대 자기조각까지 출토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엽까지 계속해서 사용하여 온 산성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에는 주위에 7곳의 보루(堡壘)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665년(문무왕 5)에 문무왕은 웅진도독 부여 융(扶餘隆)과 더불어 웅진 취리산(就利山)에서 백마를 잡아 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맹약을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 웅진의 취리산은 현재의 공주(웅진)지방에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성의 부근에 주산리(注山里, 줄뫼)와 비룡리(飛龍里, 줄골)가 있고 질현은 곧 질티이므로 이곳이 취리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웅령회맹·취리산동맹의 축단위치에 대하여」(지헌영, 『어문연구』 5, 1967)
「대전부근고대성지고」(성주탁, 『백제연구』 5,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74)
「백제부흥군의 주요거점에 관한 연구」(지정보, 단국대학교대학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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