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初名)은 징길(澄佶), 호는 복세(福世)이다.
숙종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명의태후(明懿太后)유(柳)씨이다. 1097년(숙종 2) 8세에 흥왕사(興王寺)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에게 출가하여 이듬해 머리를 깎고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왕명으로 중광사(重光寺)에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105년(숙종 10) 16세에 승통과 아울러 복세(福世)라는 호를 받았으며, 예종조에는 홍원사(洪圓寺), 개태사(開泰寺) 등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1122년(인종 즉위) 왕명에 의하여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었으나, 이자겸(李資謙)의 횡포를 보고 귀신사(歸信寺)에 은퇴하였다. 왕명으로 흥왕사(興王寺)에 머물면서 종풍을 크게 떨쳤다.
1141년(인종 19) 4월 21일 나이 52세, 법랍 44년으로 입적하였다. 죽은 후 국사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원명(圓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