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지금의 창성향교는 1765년에 중건한 것이다. 본래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 삼문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허물어지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고, 서재는 그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東齋)·서재(西齋)·교관실·제기고(祭器庫)·동서 협문(夾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典籍)·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