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부안현감, 헌납, 한성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안로가 실각한 뒤인 1537년 귀양에서 풀려나, 154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정언·좌랑을 지냈다. 1544년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 중종이 사망하였는데, 그림 재주에 뛰어난 그가 선화(善畵)로 천거되어 왕명을 받고 선왕인 중종의 화상을 그려 바쳤다.
이로써 이조정랑에서 헌납이 되었고, 왕명을 받아 간의(簡儀)를 수리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 기술이 너무나 뛰어나므로 탄복하였다. 경사(經史)와 역(易)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서화·음률·의학·복서(卜筮)에도 뛰어나 명성이 높았다.
특히 중종대에 선비로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풀벌레그림에는 가장 저명하였다. 벼슬이 한성서윤에 이르렀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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