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987. 서울출생. 1923년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국인 교사 대메론(Dameron)과 매리(Mary, E. Y.)에게 각각 성악과 피아노를 교육받았다. 그뒤 이화여자전문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당시 연희전문학교 교수 현제명(玄濟明)의 권유로 일본 동경의 벨칸토성악연구원에서 벨트라멜리 요시코(吉子)를 2년간 사사하였으며, 1934년일본 콜럼비아레코드회사에서 「아! 목동아」·「한떨기 장미」·「구노의 세레나데」·「즐거운 나의 집」 등을 취입하였다.
1937년 대판(大阪) 우메다공회당(梅田公會堂)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창회를 가졌으며, 1938년 동경 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이 때 평론가 오다(大田黑元雄)는 “정도(正道)에 들어선 유망한 예술가”라고 평을 하였다.
1939년 5월 귀국하여 서울부민관(府民館)에서 귀국독창회를 가졌고, 모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1950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과장,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예술대학장을 지냈고, 1959년 미국 국무성초청으로 줄리아드음악학교(Julliard School of Music)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프레셜(Freshel)에게 성악을 공부하였다. 1966년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65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재단이사를 역임하였다. 1970년 신사임당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