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녀(天官女)라고도 한다. 소년시절의 김유신(金庾信)과 서로 좋아하였다.
그러나 이를 안 김유신의 어머니가 “나는 이미 늙어서 밤낮으로 오직 네가 성장하여 가문을 빛내기만 바라고 있는데 너는 기생집에나 드나들고 있느냐.” 하고 울면서 책망하자, 김유신은 크게 뉘우쳐 다시는 기방에 출입하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서약하였다.
하루는 김유신이 술에 취하여 돌아오는데 말이 옛길을 따라 천관의 집으로 갔다. 천관은 한편 원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반가이 맞이하였다. 그러나 천관을 보고 놀라 술이 깬 김유신은 타고 온 말을 베고 안장도 버린 채 돌아가 버렸다.
이를 본 천관이 원망하는 노래 한곡을 지어 세상에 전하였다고 한다. 뒤에 김유신이 그녀의 옛 집터에 절을 짓고 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天官寺)라고 하였다. 이 절은 오릉(五陵)의 동쪽에 있었다.
뒤에 원성왕이 복두(幞頭)를 벗고 소립(素笠)을 쓴 채 십이현금(十二絃琴)을 들고 천관사의 샘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왕위에 올랐다는 것으로 미루어, 천관사는 신라 하대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