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교(普天敎)의 최고간부였던 채규일(蔡奎一)의 동생인 채경대(蔡京大)가 1923년 1월 보천교를 탈퇴하여 강증산(姜甑山)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객망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 사당을 세워 봉사(奉祠)하다가, 1924년김언수(金諺洙)와 함께 삼성교(三聖敎)를 세우고 보천교인들을 다수 이입시켰으며, 다시 채경대는 서울 정릉에 교당을 지어 천인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그 뒤 간부들과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뒤 신농사(神農社)라는 개척단을 만들고 만주 길림성에 토지를 사들여 수백 호의 증산교도를 이주시켰으나, 그 곳에서 교주 채경대가 죽자 이 교는 자동적으로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