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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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빈부(儀賓府)의 종3품에서 정3품까지의 당하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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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의빈부(儀賓府)의 종3품에서 정3품까지의 당하관직.

내용

세자의 후실(後室) 딸에게 장가든 자에게 처음 제수하는 벼슬이며 정3품까지 있었다.

의빈은 처음 종친과 같이 군호(君號)를 쓰다가 봉군이 남용된다는 이유로 1444년(세종 26) 7월에 문무관 종친과 별도로 산계(散階)를 정하여 이성제군부(異姓諸君府)를 부마부로 고치고 당·송제에 의하여 부마도위(駙馬都尉)의 호를 쓰게 되었다.

1466년(세조 12) 1월에는 부마부를 의빈부로 고쳐 의빈·승빈(承賓)·부빈(副賓)·첨빈(僉賓)을 두었다. 1484년(성종 15) 3월에 이르러서는 다시 의빈부의 관제를 개정하여 2품 이상을 위, 3품당상을 부위, 당하관에서 4품까지를 첨위라 고쳐 그대로『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는데, 이는 앞의 당·송제로 복귀한 것을 의미한다.

『경국대전』에는 현주(縣主 : 왕세자의 도녀)에게 장가든 자가 종3품의 첨위에 초수(初受)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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