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교

  • 종교·철학
  • 단체
  • 개항기
  • 일제강점기
동학혁명 후 남정(南正)이 창시한 종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탁명환 (국제문제종교연구소,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동학혁명 후 남정(南正)이 창시한 종교.

내용

남정은 동학혁명 이후 포교에 종사하다가 1904년에 후계자 없이 죽었으나 1920년김상설(金相卨)과 이옥정(李玉汀) 등이 서울에서 소멸되어가는 청림교의 간판을 다시 달고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림이라는 명칭은 남정의 호가 청림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교세가 늘어 한때는 만주의 길림과 북간도 방면까지 뻗어나갔고, 42개의 지부와 50개소의 포교소에 신도가 30여만 명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2세 교주 태두섭(太斗燮)과 많은 간부들이 항일투쟁의 죄명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된 뒤 교세가 약화되다가 완전히 소멸되었다. 신앙의 대상이나 사상은 천도교와 동일하나, 최수운(崔水雲)은 5만년 후천개벽의 창세주이며, 백성을 제도하고 신성한 대덕을 이루어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펴자는 것이 이 교의 요지였다.

특히, 이 교는 자기들이 최수운의 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미래의 중생들을 선도하기 위하여 미신을 타파하고 바르게 깨달아, 새로운 지식을 발휘하여 도의 원리를 크게 깨달아 지상극락을 이루어가자고 가르쳤다.

신도들에게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는 주문을 주로 외우게 하는 수련을 시켰다. 초하루·보름의 가정치성과 연 세 차례의 전체치성이 있었다.

참고문헌

  •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문화재관리국, 1975)

  • - 『朝鮮の類似宗敎』(林山智順, 조선총독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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