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은 한산주(漢山州) 도독(都督)이었다. 825년(헌덕왕 17) 정월 김헌창(金憲昌)의 아들 범문(梵文)이 고달산(高達山 : 지금의 驪州)에서 초적의 괴수 수신(壽神) 등 100여 인과 함께 모반하여 도읍을 평양(平壤 : 지금의 양주)에 정하기 위하여 한산주를 공격해 오자, 당시 한산주 도독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맞아 싸워 범문을 잡아 죽이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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