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평(汝平). 호는 소호(蘇湖). 아버지는 최운철(崔云哲)이다. 어버이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 『주역』에 통달하였고, 특히 천문에 밝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최강(崔堈)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를 풍운장(風雲將)이라고 불렀다. 고성·사천 등지에 진격하여 적병을 많이 참살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가상히 여기고 수문장을 제수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 뒤 1605년 배를 타고 침입한 적병을 형제가 힘을 합하여 격퇴하였으며, 그 공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본디 벼슬에 뜻이 없었던 그는 혼미를 거듭하는 조정에 회의를 느껴 고향에 돌아가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며 지냈다.
사람들이 그 집을 효우려(孝友廬)라고 불렀다. 안빈낙도하며 금서(琴書)를 즐겼다.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80세에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의민(義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