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1282년(충렬왕 8) 문과에 장원하고, 1285년 순마소(巡馬所)에 속하였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무농사(務農使)가 되어 농민을 독려하였다.
아들 최해(崔瀣)가 성균학관으로 있을 때 학유(學諭)에 궐원이 생겨 최해가 이수(李守)와 이 자리를 다투었는데, 정승 최유엄(崔有渰)과 이 문제로 싸우다가 고란도(孤蘭島)에 유배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민부의랑(民部議郎)에 이르렀으며, 원나라로부터 고려왕경유학교수(高麗王京儒學敎授)의 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