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출신.
원래 잡화상인이었으나 을사조약의 체결에 격분하여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6년 10월부터 이경춘(李慶春)의병부대의 도십장(都什將) · 전포장(前砲將)을 맡아 12월까지 태인(泰仁)과 부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07년 11월부터 이석용(李錫庸)의 휘하로 옮겨 이듬해 4월까지 검찰(檢察)을 맡았다.
이 때 임실 · 남원 · 진안 · 용담(龍潭) 등지에서 의병항쟁을 전개하면서 1908년 6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양윤숙(楊允淑)의병장 아래에서 중군장이 되었는데, 의병의 규모도 500∼600명으로 늘어났다.
이 때도 친일파의 가옥 방화, 군자금 모금 등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군자금의 모금은 각 이장(里長)에게 할당하여 징발하였다.
부하들은 대체로 순창과 임실 출신으로, 조복동(趙福同) · 김기룡(金基龍) · 배팔봉(裵八奉) · 박선경(朴善敬) · 임유등(林柳等) · 박가우(朴可又) · 옹태룡(邕太龍) · 엄일봉(嚴一奉) · 조화중(趙化仲) 등이 있다. 1909년 12월경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