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지(士止). 호는 모암(慕菴). 최담(崔霮)의 8대 손이다. 성수침(成守琛)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아들 최경행(崔敬行)과 함께 의병을 모으고 군량을 거두어 명나라 장수에게 보냈다. 이 일이 널리 알려져 군자감의 직장(直長)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뒤에 선공감직장을 지냈다. 정읍의 도계사(道溪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청선고(淸選考)』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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