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개성윤, 판도판서,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칭
최경(崔璟)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78년(우왕 4)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밀직부사|판종부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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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개성윤, 판도판서,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일명 최경(崔璟). 아버지는 폐신(嬖臣) 최안도(崔安道)이며, 형은 역신(逆臣) 최유(崔濡)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의 힘으로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여, 1349년(충정왕 1) 좌대언(左代言)·개성윤(開城尹)에 이어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다.

1352년(공민왕 1)에는 교동(喬桐) 갑산창(甲山倉)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여 진력협모공신(陳力恊謀功臣)이 되고,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최영(崔瑩)·안우(安祐) 등과 함께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하고,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를 시기하던 재상 김보(金普)의 무고로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가 광양감무(光陽監務)로 좌천되었다.

1354년 원나라에서 장사성(張士誠)의 토벌을 위하여 고려에 원병을 청하자, 용성군(龍城君)에 봉하여진 뒤 출정하였다가 돌아왔다. 우왕이 즉위하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건너가 공민왕의 상(喪)을 고하고, 시(諡) 및 승습(承襲)할 것을 청하였다.

그곳에서 3년간이나 억류되었다가 1378년(우왕 4) 6월에 풀려나 귀국하였는데, 이해 9월 사헌부에서 “최원이 명경(明京)에 있을 때 본국의 일을 잘못 말하여 사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탄핵하여 옥에 갇히고, 국문을 받던 중 불복(不服)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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